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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1.10 공진돌석 :: 취중진담

달괭이님 연성 http://sssweetly.tistory.com/42 이 너무 좋아 그만 이어서 써버리고 말았숩니다 흑... 고자손이지만 받아주셨음 좋겠어욥... (부끄









남들이 보기에 이공진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사람 같았다. 핏줄이나 연줄이라곤 하나도 없는 이야기 속의 사람, 어느날 갑자기 기방에서 바느질 판을 연 이상한 사람. 이공진은 모든 것을 사랑했다, 그런 주제에 쉽게 잊지도 않았다. 제가 있던 기방의 기녀들도 사랑했고, 손이 지나간 자리에 아름답게 놓인 수도 사랑했으며 가까운 시냇가에 나갔다 하면 마중 오는 떠돌이 개도 사랑했다. 그는 절대 자신이 사랑했던 것을 잊지 않는다. 추한 것의 아름다운 구석까지 찾아 사랑할 수 있었다. 아름다운 옷을 사랑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사람, 아름다운 수, 아름다운 풍경. 곧 공진은 이 가슴 터지게 아름다운 것을 만드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 또한 사랑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옷을 보게 된 순간, 혹은 그의 옷을 만들 생각을 함께 했던 그 순간 이공진은 조돌석을 사랑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

어르신은 아름답지요, 아름다운 것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공진은 제 품에서 잠든 돌석을 내려보며 가만히 웃었다. 언젠가 제 마음을 입 밖으로 꺼낸 적이 있었다. 어르신은 아름답다고, 자홍색 옷에 홀리듯 그렇게 무심히 툭 던져놓고는, 소스라치게 놀라 놀란 토끼눈마냥 눈만 댕그라니 뜨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대나무들끼리 살을 부딪히는 소리가 꼭 자신을 비웃는 소리 같았다. 돌석은 그런 공진이 싱겁다는 듯 피식 웃으며 반문했다.

"아름다운 것을 만드는 사람은 아름다운 사람인가?"
"그렇죠, 항상 못된 생각만 하면서 사는 사람이, 이렇게 아름다운 걸 어떻게 만들겠습니까?"

그리고 돌석은,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나는 그렇게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는 의미심장한 말로 쓰게 대화를 끝냈다. 공진은 그의 뒷모습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아름답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것은 완벽할 수 있습니다. 느리게 걸어가는 뒷모습이 길게 지고 있었다. 쪽빛 천 펄럭이는 소리만 가득했다. 아-바보 같은 자식, 공진은 결국 평상에 벌렁 누워버렸다. 저를 타박하는 말과는 다르게 입가엔 미소가 주렁주렁 달렸다.
뒤척임은 더이상 없었다. 공진은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슬슬 답답한 제 옷고름을 풀었다. 유난히 제 숨소리가 크게 들리는 것 같았다. 풀벌레 소리도, 그 풀벌레가 밟고 다니는 사그락대는 풀 소리도, 비단처럼 아름다운 달이 천천히 돌아가는 소리까지. 은은하고 달큰한 청주 냄새가 방 안에 감돌았다. 공진은 그것이 아마 달의 냄새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르신, 좋아합니다."

공진은 전보다 더 또렷하게, 하지만 너무 크지 않게 말했다. 돌석이 듣지 않을까 걱정되었지만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둘이 가 있을 달나라는 눈물이 나게 아름다웠던 까닭에, 공진은 삐죽 나오는 웃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러던 와중 돌석이 몸을 뒤척였다. 밤이 너무나도 길 것 같아 공진은 천장을 바라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예전부터 질리도록 본 천장이다. 그리고 다시 주욱 내려와, 돌석의 이마, 눈썹, 가만히 잠긴 눈으로 향했다. 깊은 잠을 자는 건 아닌지 감긴 눈이 가만히 움찔거렸다. 속눈썹이 무심한 공단처럼 검었다. 술을 몇 잔이고 들이켰지만 공진의 갈증은 없어지지 않았다, 없어질 수가 없었다. 아마도 죽을 때까지 목이 마르다는 걸 공진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상에 차려진 것 어느 하나도 갈증을 달랠 순 없었다. 살짝 열린 문 틈으로 검은 하늘이 보이고, 하얀 모래 같은 별들이 보이고, 눈이 시리게 밝은 달이 보인다.
아마도 달은 새벽을 지나 아침이 되면 희미해져 결국 녹아버리듯 사라질 것이다. 우리의 세계는 결국 여기서 끝일 겝니다, 어르신. 그리고 자신을 그렇게 녹여 세상에 흔적도 안 남길 이 또한 돌석이었다. 하지만 공진은 돌석을 잊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쉽게 사랑에 빠지는 주제에 그만큼 쉽게 잊지도 않았기 때문에. 죄송합니다, 공진은 돌석의 손가락 마디마디를 만지작댔다. 일평생 바느질밖에 몰라 잔꾀에도 쉽게 넘어가는 사람, 실처럼 곧을 수밖에 없는 사람. 팽팽하게 일직선으로 당겨진 그 실 위에서 줄놀음을 뛰고 있는 것이 바로 공진이었다. 한번도 흔들려본 적 없는 사람은 당황하겠지만-아마도 당황하는 것에서 끝나겠지만-, 줄놀음을 하고 있는 사람은 제 목숨을 걸고 줄을 흔든다. 공진이 꼭 그랬다, 그러고 있다. 공진은 한 잔을 더 따라 목으로 넘겼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더니, 평생 한 번도 스쳐본 적 없는 것 같이 새하얀 옷깃. 제가 한번 스쳐가도 되겠습니까? 혹은, 제가 인연이 되어도 괜찮겠습니까? 공진은 푸스스 웃으며 그의 손에 깍지를 꼈다. 스치기만 하는 인연이라도 좋았다. 마음은 살짝만 스쳐도 터질 듯 커졌지만, 그렇게 슬쩍 스치고 터져버리는 것이 차라리 좋았다. 술을 몇 잔 연거푸 들이켜서인지 돌석의 손이 유난히 따뜻했다. 이 손에서 자신이 사랑하는 모든 아름다움이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손이었다. 이 밤의 모든 것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제 무릎 위에서 가만히 잠든 돌석과 그것을 내려다보는 공진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공진은 몇 번이고 하얗게 질릴 때까지 제 입술을 깨물었다. 풀벌레도, 심지어 달이 움직이는 소리도 이젠 들리지 않았다. 방 안에는 오직 두 사람의 숨소리만 가득 차 있었다. 달이 녹아 없어지는 시간, 새벽이 느린 걸음으로 찾아오고 있을 것이다. 절대 놓지 않겠다는 듯, 하지만 거슬리지 않게 힘줘 잡은 손깍지는 작게 떨렸고, 공진은 다시 한번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사랑해요."

공진이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달에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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