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성태일 박쥐 AU떡설.. 보고싶당 하지만 박쥐 에유가 아니라 그냥 뱀푸 AU겠지.. .

음 뭔가 엄청 오래 산 자성이가 보고싶다 그리고 선님이랑 푼 썰도 보고앂다! 




조영욱 - 귀여운 뱀파이어 https://www.youtube.com/watch?v=WKS8RD-PGp4&list=PLb8ovsbeJDahQ-CbA_jdZ49OHHhUeegbe&index=12



연리목 - 보고야 말다 https://www.youtube.com/watch?v=peZk5vPJ8kM (응교 오스트 







 

너무나 오래 살았다, 이것은 이자성이 기억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기억이었다. 자성은 정말로, 너무 오래 살았다. 사람들이 생각도 못 할 만큼. 이백 오십 번째 겨울을 세다 그만 둘 정도로. 이상한 사람이라고 오해도 많이 받았다. 사람들은 늙어 가지만, 이자성은 여전했기 때문에. 그렇다고 그가 자신의 지긋지긋한 삶을 저주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는 평생 아무에게도 마음을 준 적 없었기 때문이다. 오래 산데다가, 태생부터 사람을 잘 믿지 않았던 자성은 누군가를 옆에 두는 법이 없었다. 죽음의 순간까지 사람들이 한결같은 경우는 없었다. 그에게 접근한 사람도 셀 수 없이 많았다. 자성은 덕분에 배고프지 않았다. 허기를 그들로 채웠기 때문이다. 슬프고, 외롭지도 않았다. 그저 너무 오래 살아서 이상하다고 생각할 뿐. 사람들은 스쳐 지나가는 낙엽들에 불과했다. 인연 같은 것은 너무 하찮았고, 운명 같은 것은 너무 가혹했다. 사는 것은 너무나 지루했기 때문에 자성은 삶의 최전방, 피가 흩날리고 창자가 날아다니는 곳을 선택했다. 삶에 치열해져 보기 위해. 쌈박질을, 주먹질을 하는 곳은 언제나 움직이는 생명이 있었다. 그리고 정 청을 만났다. 청도 그에겐 처음에 스쳐 지나가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이상한 사람이었다. 자신에게 잘 보이려고 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매몰차게 내치지도 않았다. 여수에서 청과 살 부대끼며 살던 시간들은 자성이 꼽는 몇 안 되는 즐거운 날이었을 것이다. 그러다 달이 정말로 크게 뜬 날 밤, 여수 항구에서 자성은 그만 청에게 제 마음을 줘 버리고 말았다. 낙엽 같았던 사람들이, 낙엽이 아니라 한 명의 사람으로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이자성은 무엇이든지 될 수 있었다. 남들보다 시간이 많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시간이었다. 청의 야망에 자신의 시간을 합하면, 청이 원하는 것을 이뤄줄 수 있었다. 자성은 그날부로 청을 따라 목포로, 군산으로, 서천으로, 마지막으로 인천으로 갔다. 청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자성도 기뻤고, 청이 어느 날 다쳐 돌아오면 자성은 하루 종일 기분이 좋지 않았다. 청이 맞을 칼을 제가 대신 맞아 준 것이 한두 번이 아닌데도, 청은 몇 번이고 자성을 제 등 뒤로 숨겼다.

 

형님.”

“...”

아 그러다 죽으면 어쩌려구요. 조심 좀 해요.”

씨빠, 좆겉은 소리 하긴... 니가 죽냐? 내가 죽지, 이 씨봉새끼야.”

 

자성의 첫 번째 관계는, 청이 만들어 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인간을 인간으로 보는 법, 모든 사람들에게는 자신들만의 이야기가 있다는 것. 알에서 태어난 것들의 각인처럼 자성은 청을 그렇게 생각했다. 자성에게 있어 죽음이란 존재할 수 없는 것이었고, 그것은 청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허기를 못 참고 청의 손목을 저도 모르게 물었던 때, 그리고 모든 사실을 청에게 말해버렸을 때. 청은 영원히 살고 싶지 않다고 분명히 말했다. 열심히 청의 손목을 빨면서도 자성은 의구심을 버리지 못했다. 왜 오래 살고 싶지 않다고 하는 걸까? 피가 빨려 들어가듯, 그 의문 또한 어딘가의 수챗구멍으로 빠지고 말았다. 자성은 순간 여수를 생각했다. 아마- 죽지 못하는 것은, 누군가에게 있어 저주가 아닐까? 갑자기 너무나 오래 산 자신이 징그러운 존재처럼 생각됐다. 평범한 사람들처럼 늙고 싶다, 청과 함께. 피와 창자가 떨어지는 공간 속, 자성은 갑자기 모든 행동을 멈춰버리고 말았다. 청의 장례식을 보면 어떡하지? 그 순간 그곳에 있던 모든 칼들이 이자성을 향했다. 깜빡, 꺼져 가는 의식 속에서도 자성은 청의 장례식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자성은 인정하기로 했다. 청이 없으면 자신의 존재 가치 또한 사라진다는 것을. 자성은 애초부터 정을 주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헤어짐 또한 몰랐다. 새하얀 병실에서 눈을 다시 뜬 그날, 또 살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저를 걱정스럽게 타박하는 청의 목소리에 자성은 저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헤어짐은 무너짐과 같은 말이었다.

 

 

 

세상이 무너지는 날은 생각보다 금방 찾아왔다. 독하게 살어, 그래야 네가 살어. 바스스 부서진 말들은 손가락 사이로 스쳐 지나갔다. 너무나 짧은 시간이었다. 처음 겪는 이별은 절대로 익숙한 것이 아니었다. 자성은 처음으로 사람 때문에 울었다. 꺽꺽 소리를 내며 울었다. 누군가를 마음 한 구석에 내준다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었다. 청의 시체를 밟고 회장 자리에까지 오른 자성에게 의미 있는 것은 이제 하나도 없었다. 목숨 값은 너무나 저렴했다. 자성이 오래 살았다고 해서 그 시간들이 남들보다 더 빨리 가는 것은 아니었다. 청의 1년 또한 자성의 1년이었고, 그 시간은 한순간이라도 허투루 간 적이 없었다. 자성은 골드문 회장 자리를 내려놓고 어딘가로 떠났다. 자신이 죽지 못 하는 것은 저주나 다름없다고 생각했고, 때문에 자신과 같이 끝까지, 영원히 살자고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부탁하는 것은 결국 파멸이라고 생각했다. 사경을 헤매는 청 앞에서, 청이 죽기 그 직전까지도 너무나 고민하다 결국 주지 못했다. 그런 자신이 한심할 법도 하지만 이 세상에 영원히 사는 것을 바라는 사람은 없다. 기껏해야 몇 백 년 더 살고서는, 지루하다고 눈물을 뚝뚝 흘리다 자기가 있는 방의 벽을 손톱으로 긁을 뿐이었다. 그 짓을 청에게 시킬 수는 없었다. 하지만 청이 죽은 것은 너무나도 억울했다. 태어나서부터, 가장 오랜 기억에서부터 자성은 추억 속에서 살고 있었다. 영원히 사는 것은 역설적으로 그를 과거에 묶이게 했다. 자성은 모든 것을 정리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골드문 회장직을 내려놓고 자성은 청과 함께 했던 곳들을 찾아갔다. 바다는 항상 그들과 함께 있었다. 서천에서 군산으로 간 후, 군산에서 목포로, 마지막 종착지는 여수였다. 하지만 그는 목포로 내려갈 수 없었다. 벚꽃이 상상도 못 할 만큼 흐드러지게 핀 어느 봄날, 월명공원에서 넘어온 벚꽃잎들이 바다에 하나 둘 떨어졌다. 군산에서 살 때 자주 가던 해망동은 예전과 다를 게 하나 없었고, 이자성은 한태일을 만났다. 반쪽짜리 만남이었지만, 무너짐을 복구하기엔 충분했다. 얼굴은 비슷했지만,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 혹시 성함이 어떻게 되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이름 알아서 뭣에 쓰게요.”

, 아는 사람 같아서요.”

태일이요, 한태일. 누구랑 닮았는가?”

그냥, 아는 형님이랑...”

 

자성은 그때부터 태일을 눈으로 따라다녔을지도 모른다. 퇴근하고, 출근하고, 가끔 근처로 수금 나가는 한태일을. 자성에게 남는 건, 시간뿐이었다. 게다가 날씨도 좋았다. 예전 군산에 있을 땐 몰랐는데, 알고 보니 벚꽃이 사방천지다. 매일 밤 부둣가에서 싸움이나 하다가, 낮이 되면 푸지게 자는 생활을 해서 그랬을까? 자성은 또 청 생각에 코가 시큰해지는 것을 느꼈다. 날씨만 좋았다. 자성은 멍하니 바다를 쳐다봤다. 뒤쪽 월명산에서 날아오는 꽃잎이 간지러웠다. 담배를 하나 빼물던 찰나에, 공판장에서 익숙한 걸음걸이가 보였다.

 

, 태일 씨. 여기서 다 보네. 퇴근해요?”

... 자성 씨 아뇨? 뭔 일이셔?”

퇴근하셨어요?

예에, 오늘은 다 돌았는디. 그쪽은?”

 

저야 남는 게 시간이죠, 자성이 눈이 휘어지도록 웃었다. 청과 다른 미묘한 기분에 자성이 태일을 바라보지 않은 시간이 거의 없었다. 청과 나이가 비슷한데도, 태일은 조금 더 투박했고 서툴렀다. 자성은 또 자신이 사랑에 빠졌다고 생각했다. 그 정도로 무너짐은 너무나 쉬운 현상이었다. 어느 날은 잘 아는 분식집으로, 또 엄청 매운 중국집으로, 달달한 빵집으로, 그리고 또 그만큼 순진했다. 벚꽃이 다 지던 날 자성이 먼저 내민 손에 답하듯 내민 것도 태일이었고, 그 손을 보고 감동받은 듯 환하게 웃으며 쳐다보는 자성을 보고 또 얼굴이 빨개져 투덜거린 것도 태일이었다. 반쪽짜리 만남, 반쪽이라도 좋았다. 비행장이 있었던 탓에, 군산에는 유난히 비행기가 많이 지나간다. 머리 위 구름을 반으로 가르는, 비행기가 지나가고 있었다. 동백꽃은 없었지만, 여수는 아무래도 좋았다. 자성은 잡은 손을 꼭 쥐었다. , 사랑에 빠지자. 헤어짐은 그저 헤어짐에 불과했다.

 

 

 

 

태일의 병을 알게 된 것은 3달 전이었다. 자성은 마음이 조급해졌다. 청처럼 태일도 사라져 버리는 건 아닐까? 태일은 자꾸 제 병을 숨기려 들었다. 고칠 수도 없다는데 이대로 살다 죽을 거라는 말을 너무나 쉽게 했다. 속상한 마음에 자성은 눈을 내리깔았다. 태일 씨. 축 쳐진 자성의 부름에 태일은 머뭇머뭇 고개를 들었다. 그 모습이 꼭 강아지 같아 자성은 가만히 웃었다.

 

태일 씨는 영원히 산다는 거, 어떻게 생각해요?”

 

영원히 사는 거, 살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고 하는 태일의 대답에 자성이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복잡한 마음이 속에서 들끓었다. 청처럼 태일을 보낼 수 없다는 생각과, 또 정말로 영원히 사는 것이 축복인지. 청에겐 제 피를 주지 못했다. 청이 거절했기 때문에. 하지만 태일은? 태일은 영원히 살고 싶다고 하지 않았나? 자성은 저도 모르게 태일의 손을 꽉 잡았다. 욕심에 눈이 먼 것 같았다.

 

, 거이, 자성씨, 이것 손 좀...”

..., 미안해요.”

 

자성이 화들짝 놀라며 손을 뺐다. 연갈색 눈동자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눈에 빠져 죽을 수 있다면, 저 맑은 진흙탕에 익사할 수만 있다면. 자성이 씁쓸하게 웃었다. 그러다 가만히 잡은 손에 입 맞췄다.

 

 

 

태일은 마지막을 깔끔하게 보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일은 끝까지 해야 한다며 몇 가지 파일을 공판장에서 가져왔다. 병원 침대는 둘이 앉기 충분했기에, 자성은 뒤에 앉아태일을 안고 팔랑팔랑 넘어가는 종이쪽만 무심히 보고 있을 뿐이었다. 자성의 숨소리가 태일을 성가시게 하는 일은 몇 번 있었지만, 그도 예전에 일을 했기에 일을 적극적으로 방해하진 않았다. 그러다 자성은 익숙한 단어를 보고 숨을 멈췄다. 골드문이었다.

 

태일 씨, 잠깐만요.”

 

자성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서울... 재범파, 북대문파, 집결. 날짜 또한 그 날이었다. 무미건조한 서류는 작정한 듯 퍼즐처럼 정보를 쪼갰다. 하지만 자성은 알 수 있었다. 재범파와 연이 닿은 군산 사무실 모든 인원이, 북대문파 정청을 죽이려 작정한 그 날 모두 집결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인원 중 한태일도 분명히 있었다는 사실을. 자성은 제 입술을 꼭 깨물었다. 설마. 한태일이 정청을 죽인 사람이 아닐까? 그때 보고는 분명히, 재범파가 아닌 사람들도 여럿 있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정말로 그렇다면? 자성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역시, 인연은 너무 하찮았고 운명은 너무 가혹했다. 마지막으로, 그렇기 때문에 사랑을 하기엔 너무나도 슬펐다. 자성은 천천히 태일을 돌아봤다.

 

태일 씨, 나 뭐 물어볼 거 있는데.”

뭐요?”

서울, 간 적 있어요?”

... 몇 번 가봤지. 근데 왜 그려요.”

 

그냥... 궁금해서. 자성이 태일의 어께에 얼굴을 묻었다. 화창한 날씨는 이제 없었다. 해가 떨어지고 어두워지는 시간이다. 암흑으로 모든 게 물든다. , 반쪽짜리 만남이여. 자성의 손이 태일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태일은 항상, 먼저 다가오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이것이 청과 결정적으로 달랐다. 자성은 어느 순간 태일에게서 청을 찾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것이야말로 서로를 갉아먹는 일 아닌가? 자성은 다시 한 번 생각했다. 너무나 오래 살았다고.

 

사람 찌른 적 많죠?”

그런 건 왜...”

대답해요. 서울 가서 사람 찌른 적 있죠?”

 

태일은 말이 없었다. 이런 질문에 대답할 사람이 몇이나 있겠냐만은, 자성은 태일의 어께를 힘줘 잡았다. 말해 줘요, 태일 씨. 태일의 얼굴을 어루만지던 손은 어느새 내려가 그의 목덜미 근처에서 머물고 있었다. 태일의 목울대가 꿀꺽 넘어가고, 어느 순간 가로등이 팟, 켜졌다. 병실 창문으로 들어오는 가로등 빛은, 이 모든 일의 목격자였다. 태일은 눈을 꼭 감았다. 너무나 노골적인 질문에, 제 창자가 헤집어지는 기분이었다. 자성의 손에 힘이 점점 들어갔고, 태일은 떨리는 목소리로 그렇노라 대답했다. 아무 생각 없이 갔는데, 칼이 난무하고 피가 튀기는 그 장면을. 태일은 눈 뒤에서 끄집어냈다. 변명할 생각은 없었지만, 변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기도 살겠다고, 그 많은 사람들이 지하주차장에서 서로 찌르고 갈퀴고, 검은 선글라스를 쓴 남자와 눈이 마주친 건 그때였다. 씨발, 그 새끼 잡으라는 호통에 바로잡은 칼은 자꾸만 땀에 미끄러졌고, 흉흉한 그 눈빛에 입술이 저렸다고. 선글라스 뒤에 있어도 저와 똑같이 생긴 연갈색 눈동자는 자꾸만 태일을 찌르는 듯 했다. 엉겁결에 든 칼은 그의 옆구리를 찔렀고, 곧이어 뒤에서 들어온 칼이 반대쪽 옆구리를 찔렀다는 것. 그렇게 저 때문에 중심을 잃고 끌려간 그 남자는 엘리베이터로 들어가 다신 볼 수 없었다. 눈을 질끈 감고 모든 일을 이야기하는 태일의 모습에 자성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지하주차장의 눅눅한 공기가 방을 감돌았다. 자성은 가만히 눈을 내리깔고, 태일의 어께에 얼굴을 묻었다. 태일이 청을 죽인 거나 다름이 없었다. 역시 청을 보내고, 울면서 했던 그 다짐이 맞았다. 다시는 마음을 주지 않겠다고 한 그 다짐을. 슬픔이 분노로 변하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분노는 머릿속을 백야로 만든다. 하얘진 머릿속, 모든 것이 점멸했다. 자성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태일 씨가 죽인 거나 마찬가지네요.”

 

태일이 당황해 뭐라고 하기도 전에 자성은 그를 잡아 눌렀다. 흰 시트가 눈이 부셨다. 태일의 얼굴 위로 자성의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자성의 얼굴이 천천히 내려오고, 살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시트 위로 눈물과 섞인 피가 흘러내렸다. 피 빨리는 느낌이 너무나도 선연했기 때문에, 그 이상한 느낌에 태일은 두려웠다. 울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잘못했다고, 미안하다고 소리 지르는 태일의 목소리는 자성에게 들리지 않을 것이다. 피와 눈물이 방울져 떨어진다. 꼴딱, 목구멍으로 피 넘어가는 소리가 선명했다. 배려라곤 하나도 없는 몸짓이었다. 자성은 작정한 듯 짓이겨질 정도로 피부를 잘근잘근 씹었다. 그런 주제에, 괜찮다는 듯, 달래는 듯 자성은 태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억울하다는 생각도 감히 할 수 없었다.

 

, , 미안, 잘못...잘못했, 흐으.....”

 

자성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입가가 새빨갰다. 태일은 자성이 얼굴을 떼자마자 급히 피가 흐르다 못해 토하는 곳을 꾹 눌렀지만 입이 얼어붙은 듯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자성은 그런 태일을 내려다보며 입술을 꾹 깨물었다. 아무리 태일이 손사래를 치며 버둥거려도 자성은 푹 내려앉은 눈으로 그의 목을 졸랐다.

 

뭐 잘못했는지 압니까?”

 

목이 막혀 헥헥대는 태일에게 자성은 알 수 없음, 두려움 그 자체로 존재하게 되었다. 자성의 표정을 도저히 읽을 수 없었다. 다가오는 입술도 이젠 두려웠다. 입술을 전부 뜯어버릴 것 같은 입맞춤, 목에서 분출되는 피도 모자라 입술에서도 피가 줄줄 흘렀다.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는 듯 자성은 이제 귀를 물어뜯기 시작했다. 태일의 이는 이제 하얀 부분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붉어졌다. 비린내가 온 세상에 진동하는 것 같았다. 거친 숨소리가 태일의 귓가에서 아른거렸다. 그것도 잠시, 귓불을 물고 있던 이는 우악스러운 짐승의 이로 변해 귀 전체를 자근자근 씹기 시작했다. 비명도 지를 수 없었다. 귀가 반으로 접히는 기분, 거친 숨소리 사이에 섞인 원망의 말들. 목을 조르는 데에는 한 손만 있어도 충분했다는 것을 그때 태일은 기억했다. 상어 이처럼 날카로운 이빨들, 자성은 절대 태일을 놓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절대로, 그리고 영원히 자신이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피가 흥건했다. 자성이 제 손목을 물어뜯었기 때문이다. 하얀 손목 위에서 검붉은 피가 분수처럼 솟구치는 것 같았다. 자성이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포기 반, 원망 반이 섞인 눈은 결연해보이기까지 했다.

 

마셔요.”

 

움직일 생각을 않는 태일에게 자성은 제 손목을 들이댔고, 그의 입술에 진득하게 비볐다. 마시라니까요. 그가 태일의 머리채를 잡고 뒤로 젖혔다. 무방비하게 벌려진 태일의 입술 위로 피가 뚝뚝 흐르는 제 손목을 가져다 대는 자성은 다시 한 번 태일의 목에 이를 박아 넣었다. 태일의 손이 급하게 침대를 쳤지만 기어이 꼴깍대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자성은 제 손을 치웠다. 하얀 시트가 온통 피투성이였다. 자성이 우악스럽게 태일의 셔츠를 잡아당겼다. 단추가 속절없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평생 이것만을 바랐다는 듯 그가 태일의 허리를 꼭 끌어당겨 안았다. 어느 부분이든 다 좋았다, 이를 깊게 박을 수 있는 곳이라면. 눈물, , , 피부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은 모두 다 나오는 것 같았다. 태일의 온 몸이 끈적거렸다. 자성은 고개를 숙이고, 꼭 눈물이라도 한 바가지 흘릴 것 같은 표정으로 태일의 가슴 위에 가만히 손을 댔다. 고개를 숙인다, 그리고 제 손이 있던 자리를 지긋이, 몇 번이고 새빨간 혀로 쓴다. 신성한 의식의 마지막은 제물이다. 그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는 듯 자성이 이를 세웠다. 태일이 찢어진 목으로 비명을 지르지만 그것은 자성에게 들리지 않는다. 목에서 흐른 피가 선을 타고 내려와 배꼽에 고였다. 혀는 그것을 따라 천천히, 그리고 욕정하듯 움직였다. 창문을 타고 넘어온 노르스름한 가로등 빛이 곧은 자성의 이마를 비췄다. 태일의 눈에서 눈물이 쉬지 않고 쏟아진다. 배 언저리에서 놀던 자성의 혀가 다시 태일의 입술로 올라왔다. 아까와는 사뭇 다른 부드러운 맞춤이었다. 하지만 날카로운 이는 이미 찢어진 태일의 입술을 다시 헤집는다. 자성은 계속 눈을 감고 있었다. 태일은 무책임하게 긴 그의 손가락이 제 얼굴을 감싸는 것을 느꼈다. 이 상황에서마저 손은 여전히 따뜻했고, 속눈썹은 여전히 길었다. 모든 게 여전했다. 땅을 치고 울고 싶은 건 자신인데, 어째서 자성의 볼을 따라 길게 눈물 그림자가 늘어지는지 태일은 그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밭은 신음이, 훌쩍이는 소리가, 거친 숨소리가 방 안을 채우고 있었다. 자성의 손목에선 아직도 피가 흐르고 있었다. 태일은 쥘 것 없는 하얀 침대에서 속절없이 주먹만 꼭 쥐고 있었다. 자성은 그런 태일의 손을 잡아 끌었다. 그의 손가락을 이로 살짝 긁다, 손바닥을 핥았다. 천천히 자성이 눈을 떴다. 가로등 불빛은 그의 얼굴을 반밖에 비추지 않아 자성의 얼굴을 더욱 기묘하게 만들었다. 빛을 받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의 눈은 의중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어드메에 욕정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은 또렷하게 알 수 있었다. 몇 번이고 태일의 손등에 입 맞추던 자성은, 이번에도 예고 없이 짐승처럼 이를 박았다. , 하고 살점이 찢어지는 소리가 귓가에 선명했다. 태일은 소리 없이 비명 질렀다. 밭은 신음이 훌쩍임을 대신했다. 자성의 흰 입가가 붉었다, 붉다 못해 검었다. 태일의 몸뚱어리가 흐른 피로 가득했다. 바지와 속옷이 그 피들을 전부 먹고 있었다. 자성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그것들을 단숨에 끌어내리곤, 저 쪽 침대 발치로 던져 버렸다. 태일이 마구 발버둥 쳤다. 하지만 피가 나갈 대로 나간 그의 몸은 영 말을 들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흐려져 가는 의식 속에서 태일은 자성의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기억했다.

 

태일 씨.”

 

영원히 살고 싶다면서요. 무정한 말들이 가슴을 찔렀다. 울고 싶었다. 자성은 허리를 숙여 그를 껴안았다. 왜 그랬어요? 그가 태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죄책감은 없었다.

 

왜 청이 형님을 죽였소?”

 

억울하다고 생각하지 마요... 평소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자성의 손가락은 이제 태일 자신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무책임한 밤이었다. 태일의 온 몸을 탐욕스럽게 주무르고 쓸며, 자성은 잠시 눈을 감기로 했다. 투병하느라 부쩍 마른 피부들이 거칠했다. 허벅지 안쪽에, 장딴지에, 복숭아뼈에 이를 박았다. 울렁울렁 밖으로 기어 나오는 따뜻한 냄새가 온통 자신의 것이었다. 태일 씨, 일어나요. 자성이 태일의 어께를 흔들었다. 태일이 작게 눈을 뜨고, 자성은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태일 씨가 청이 형님을 죽인 거나 다름없으니까, 이제 태일 씨가 제 것이 되는 걸로 합시다.”

 

자성이 눈꼬리가 휘어지게 웃었다. 내가 영원히 살게 해준다고 했잖아요. 뾰족한 키스가 쉼 없이 내려왔고, 자성이 바지춤을 내리는 이질적인 소리가 끼어들었다. 웃는 낯과 다르게 손가락은 아래쪽으로 마구 쑤셔 들어왔고, 태일은 다 쉰 목으로 쌕쌕 소리 지르고 있었다. 피해자만 없고, 가해자만 있는 밤이었다. 울지 마요, 울고 싶은 건 나에요. 자성이 가만히 속삭였다. 혹은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만 있는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윤활제로는 눈물과 피가 쓰였다. 미안해요, 우리 처음 잘 땐 이것보다 더 좋은 걸 쓰고 싶었는데. 처음 만났을 때처럼 능청스럽고 다정한 말투에 태일은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것을 느꼈다. 곧이어 몸이 반절로 갈라지는 아픔이 살을 비집고 들어왔다. 신음소리가 쏟아지기도 전에 자성의 손이 태일의 목울대를 잡았다. 짓이겨진 곳을 잡았는지 피가 터졌다.

 

, 내 앞에, 나타난 겁니까?”

, , 으으..., ..”

 

태일이 손을 디딘 모든 곳에 핏빛 그림자가 졌다. 시트는 이제 온통 붉은빛으로 젖어, 몸 닿는 모든 곳이 끈적끈적했다. 자성이 허리짓을 한 번 할 때마다 태일은 모든 게 무너지는 것 같았다. 처음엔 정말로, 이럴 줄 몰랐는데. 영원히 살고 싶다고 난 장난으로 욕심 부렸을 뿐인데. 자성이 팔뚝 안쪽의 연한 살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멍이 아주 크게 들 것이다. 욕망만큼의 멍이. 태일은 멍하니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자성이 태일의 어께를 껴안고 앉혔다.

 

미안해요, 많이 축축하죠.”

 

쓸데없는 배려, 그 속의 비아냥거림. 태일은 제 아랫배가 화끈화끈해지는 것을 느꼈다. 뻑뻑한 입구는 결국 찢어져 피가 주르르 흐를 것이다. 자성이 태일을 꼭 껴안았다. 짐승이 제 새끼를 꼭 껴안듯. 자성이 태일의 팔을 제 어께에 올렸다. 천천히 그가 어께에 이를 박아 넣었다. 태일의 몸이 움찔, 작게 떨렸고, 자성을 안은 두 팔에 힘이 들어갔다. 자성이 작게 속삭였다. 괜찮아요, 괜찮아. 대견하다는 듯 그가 태일의 등을 쓰다듬었다. 사랑이 증오로 바뀌는 것은 너무나도 금방이었다. 증오하면서도 사랑한다는 건 다른 이야기였다. 자성은 그렇게 몇 번을 더 움직이다 태일의 안에 결국 파정했다. 몇 번 숨을 고른 다음, 자성은 흐트러진 머리와 셔츠를 바로 하고 태일을 내려다봤다. 온통 피투성이였다. 동백꽃 같다. 자성은 작은 가재수건으로 태일의 얼굴을 닦았다.

 

태일 씨, 눈 좀 떠 봐요.”

 

태일이 천천히 눈을 떴다. 가물가물한 게 금방이라도 푹 꺼질 것 같았다. 연갈색 눈동자는 여전히 빠져 죽고 싶었다. 자성은 그 눈을 멍하니 보다, 퍼뜩 병원복과 아까 침대 발치에 던져놨던 옷가지들을 주웠다. 그리고 태일에게 주섬주섬 입히고는, 휠체어를 펴고 태일을 앉혔다. 짐승이 제 새끼를 챙기는 것, 얼마나 멋진 일인가! 자성은 제 자켓을 태일의 어께에 걸쳤다. 동백꽃 같은 침대와 작별해야 할 시간이었다. 자성은 미끄러지듯 그렇게 병원 복도를 나섰다. 마태복음에서도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네 원수를 사랑해라. 그리고 그것을 지금 실천하고 있는 자신은 얼마나 기독교적으로 완벽한 사람인가. 자성이 살짝 태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다음은 목포로 가야겠다, 마지막으로는 여수에서 사는 것이다. 죽을 때까지, 영원히. 밤 비행기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반짝 반짝이는 별을 만들며. 밤하늘을 찢어가며.

, 반쪽짜리 사랑, 반쪽짜리 만남. 정말로 사랑한다면, 죽게 그냥 내버려뒀어야 하는 건데.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른 사랑은, 집착은, 두려울 게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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